운학리에서 밭에 물만 주고 주린 배를 부여잡고 치악산 성남매표소로 차를 몰았다.
이거 오늘 내가 치악산 단풍구경 가자고 해놓고 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작년 봄에 친구 놈과 안양 수리산을 최단 코스로 오르다 정상을 이백미터 앞두고 다리가 풀리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서 막걸리 한잔에 쉰김치 한조각과 마른멸치 몇마리로 아픈 가슴을 달래며 하산해서 안양
중앙시장에서 순대국 한그릇과 머리고기에 소주를 한잔하면서 신세를 한탄하던 내가 이일을 어찌 해야
하나 먼저 아침부터 해결하고 생각해보자.
성남매표소에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 앞에 있는 성남산장에 들어갔다.
메뉴판에는 라면은 없는데 아주머니에게 라면이 되냐고 물으니 된단다 일단 라면 두개
라면이 오기 전에 과자를 한봉 먹어주고 과자이름이 국희..
라면이 각자의 그릇으로 나오지 않고 이렇게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양푼에 나오니 그 맛에
보는 맛이 추가되서 더욱 개운하고 맛이 있다.
치악산 성남에서 상원사 구간을 택했는데 거리가 5.2키로이고 올라가는 길이 계곡과 쭈욱 이어있어서
경치구경을 하면서 오르기로 했다.
상원사에 오르기 전에 모습인데 옆지기는 즐거운 표정이고
나에게는 비장함이 엿보인다.
계곡따라 쭈욱 이어진 등산로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했살을 받아서 화려하다.
성남매표소를 지나 입산관리소에는 치악산 등산로 안내표지판이 커다랗게 서 있다.
옆지기는 밝은 표정으로 등산을 즐기고 있는데
가파르게 만들어진 나무계단을 만나면서 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워 오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가슴이 터질듯이 느껴진다.
급기야 주저앉아서 숨고르기를 하고
이놈의 나무계단이 도대체 몇계단이나 되는지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인다.
점점 지쳐오고 옆지기가 뒤에서 나를 민다 밀어... 창피해서 못 살겠네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을 거다. 그래 가자 가.
가다 쉬다를 하는 횟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저 멀리로 상원사의 일주문이 보인다
아이고 이제는 살았다 살았어...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젠장... 옆지기는 아직도 쌩쌩하다. 승리의 브이. ..헉 헉 숨이 또 막혀 온다.
상원사의 약수터 옆의 평상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이고 저길을 어찌 올라왔나
그냥 즐겁기만 한 옆지기는 또 승리의 브이자로 나를 약올리고
상원사 경내에서 둘이서 사진 한방 박고
오늘 올라온 상원사가 전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지어진 절이란다 해발 1000미터라고 하는데 왜 이리도
높이 지었을까? 신도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헥~헥~헥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오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해서 고립될텐데
옆지기는 대웅전을 들여다 보고 안에서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힘들여 올라오니 이리도 기분이 상쾌한데 이 맛에 산을 오르나
산아래로는 능선이 줄기차게 뻗어 나간다.
보은의 종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들음직한 치악산 보은의종에 관한 전설.
등장인물과 짐승 - 경남의성의 나그네, 꿩, 구렁이
결론은 꿩이 나그네의 은혜를 갚았다는 전설
보은의 종 유래비 앞에서
상원사의 재래식 화장실 모습.
서까래에 달려 있는 풍경이 한가롭게 흔들리며 산사에는 가을이 깊어간다.
자.. 이제는 하산.
우선 약수로 목을 축이고
등산을 위한 복장이 나는 등산화가 아니라서 발목을 꽉 조여주지 못하니 아무래도 돌밭인 하산길이
더 걱정된다.
브이자 포즈 .
빨간장갑이 아니고 빨간 고무장갑같이 보인다.
빨리 안내려 온다고 또 뒤돌아 본다.
이런 돌밭길을 내려가려니 발바닥이 아프고
다음부터는 등산화를 신고 다녀야 발과 발목에 부담이 없을 것 같다.
등산화 끈이 풀렸는지 끈을 다시 매고 있을 때 똥침을 놔야되는데 그걸 못한 게 하산하는 내내
아쉬웠다.
나는 오르는 것 못지않게 하산이 더 힘이 드는데 여전히 여유만만
계곡에 비친 파란 하늘
흐르는 계곡물
앞서 내려가며 여전히 약을 올리는 옆지기
나이테를 세어 보니 족히 삼십년은 되었을 텐데 누가 베었을까
하산길에 이정표 성남매표소까지 2.6키로 헥 ~ 헥
상원사로 올라오는 길에 이것을 보았는데 내 몸도 못 가누는데 어찌 이것을 들고갈 수 있으리오.
그래도 상원사로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들고 올라온다.
헥~헥~거리며
쌍브이 포즈로 또 ...
전문 산악인의 포즈로
정말 잘도 올라가더라
하산길 그 끝이 드디어 보인다.
힘이 들었던 산행이었지만 오르고 난 뒤의 성취감에 뿌듯한 하루였다.
근래에 가장 힘들었던 하루...
오는 길에는 신림IC 오기 전의 식당에서 청국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먼 길을 달리고 달려서 집으로 향했다.
보람찬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