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난지가 언제인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번 태풍 우쿵으로 인해 지루하던 무더위가 한풀
꺽이는듯 하여 토요일에는 새벽에 운학리에 가기로 하였는데 목요일 집으로 날라온 딸래미의 건강검진
통보를 보고는 스케줄이 엉망이 되었다.
우측 청력에 이상이 있으니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소견이 적힌 결과지를 보고 부랴부랴 안양의
한림대병원에 금요일에 검사를 받아보았는데 귀가 깨끗하고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 혹시 모르니 토요일에
CT촬영을 해보자 하여 토요일 오전10시 30분에 예약을 해 놓았으니 운학리에 가는것 보다 딸래미의 건강
이 더 걱정되었다.
토요일 늦게 운학으로 출발하면 차가 많이 밀릴것 같아서 이번은 포기하고 다음주에나 가려 마음을 먹고
아침에 마눌님과 딸래미를 데리고 한림대병원으로 가서 CT촬영을 끝내고 담당의사와 상담을 해 보니
왼쪽 청력은 보통사람보다 월등히 좋은데 우측 청력은 많이 안 좋다고 하면서 약으로 치료할 수는 없고
일상생활 하는데는 지장이 없을거라 하면서......
검사를 끝내고 한림대병원을 나서는데 마눌님이 왈칵 눈물을 쏟는다.
말없이 담배에 불울 붙여 입에 물고는 아무 말없이 월마트로 발길을 옮긴다.
퉁수바리 딸래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한두걸음 뒤따라 오면서 한마디 한다.
자기 친구도 왼쪽 청력이 자기랑 똑 같아서 같이 다니면 자기는 왼쪽에 그 친구는 오른쪽에서 다닌다고
한다. 꼴에 서로 윈윈한다고 장님과 앉은벵이도 아니고...
월마트에서 11시 20분경에 늦은 아침을 먹는데 마눌님이 우울한 기분을 바꿀 겸 운학리에나 다녀 오자고
한다. 지금 시간에 출발하면 영동고속도로가 많이 막힐텐데...
썩 내키지는 않지만 죽은 놈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산 놈 소원 그것도 마눌님 소원을 못들어 주랴 싶어
12시 조금 넘어 운학리로 출발했다.
용인까지 조금 조금 막히는 길을 지나서 운학에 도착하니 2시 30분이니 다른 때보다는 시간이 더 걸려
도착했는데 운학리로 들어서니 비가 내린다.
차를 파킹하고 마당에 내려서니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그래 우울한 기분을 이 바람과 젖은 땀에 날려 보내자.
태풍 우쿵(원숭이의 왕)의 영향으로 구룡산 위로는 검은 구름에 몰려다니고 비가 흩뿌린다.
여름 내내 그냥 두었더니 풀인지 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던 메리골드 주변을 정리하고 나니
거둬낸 잡초가 이만큼이고
봉숭아와 자귀나무 옆의 잡초가 또 이만큼이다.
마당에 돌을 깔아 놓은 곳에서 뽑아올린 잡초가 이만큼이다.
이놈의 잡초는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두껍게 깔아놓은 돌 밑에서도 올라오니 줄기를 잡고 좌우로
또는 위 아래로 세게 흔들어야 그 뿌리가 들어나고 그래도 버티는 놈은 괭이로 캐내든가 아니면
괭이로 지렛대같이 젖혀야 허연 뿌리가 말 그대로 뿌리채 뽑혀나온다.
뿌리채 뽑혀 나올 때의 그 기분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인간제초기 마눌님은 고구마 심은 곳의 잡초를 뽑으려 자리를 이동하고
멀리 왼쪽으로 옥수수가 보이는데 지난번 비로 밭둑이 넘쳐 물이 지나가서 자빠지고 병이 들었는지
누렇게 떠 있고 옥수수가 별로 열리지 않았다.
당근도 상황은 마찬가지고 어찌 물이 지나가도 심어놓은 농작물 위로 지나갔는지
코팅된 빨간장갑을 끼고 낫질을 했건만 잡초의 밑둥을 날려 버린다는 것이 그만 내 왼손 애끼손가락을
베어버렸다. 장갑을 벗고 보니 손가락은 땀으로 퉁퉁 불어있고 그동안 낫을 갈지 않고 낫질을 했던 것
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잘 갈아놓은 낫이었다면 상처도 그만큼 컸을 것을...
마눌님은 항상 사다 놓은 숫돌에 낫 좀 갈아서 쓰라고 했는데 누구 잡을 일 있냐고..
손을 베고 나니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담배 한대 피우면서 장화를 내려본다.
참 요긴한 물건이다.
덥지 않으니 밭일도 할만하다. 땀은 덜 흘리고 목도 마르지 않고 앉았다 일어서도 하늘과 땅이
노랗지 않고 말짱하니.... 지난번에는 땅이 벌떡 일어서고 하늘이 빙빙 돌던데
나 이러다 진짜 농부되는 거 아냐. 적성에 맞으려고 해....
밭에는 풀이 가득하니 메뚜기가 천지삐까리다
자동차에 붙어서 쉬고 있는 메뚜기는 디카를 들이대도 나 몰라라 숨죽이고 있다.
발 닿는 곳마다 낫이 닿는 곳마다 온 사방으로 튀는데 저걸 언제 날잡아서 메뚜기 튀김이나 해먹어.
자동차 바퀴에도 안 떨어지려고 다리를 활짝 벌리고 붙어있다.
쉬는 동안에 젖은 장갑도 말려둬야 다시 일할 때 편하다.
그런데 잠시 쉬면서 마를지 몰라 . 아무튼 덥지 않고 시원하니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들어오는 입구의 전주 옆의 밭둑과 두릅나무옆의 풀을 낫으로 베고 나니 한결 깨끗하다.
군대 가기 전에 머리를 박박 밀었을 때의 기분같이 마음이 시원하다. 그동안 잡초를 키웠으니..
오늘 들어올 때는 귀신집 같았는데.....
물을 좋아하는 야콘은 2주전에 물을 흠뻑 주고 왔는데 뜨거웠던 날씨를 탓하는 듯이 잎이 바싹 말라있다
고구마도 덩굴은 많이 뻗어나가 있는데 고구마가 달려 있을까 궁금하다.
잡초를 제거하고 난 뒤의 메리골드는 씨앗을 채취해야 되는데 언제쯤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깨끗해진 봉숭아와 자귀나무 부근
고추는 빨갛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쉬면서 황둔에서 사온 찐빵을 간식으로 먹고
잡초를 제거하는데 사용한 괭이와 낫.
아무래도 낫이 무뎌서 숫돌에 갈아야 될듯하다.
어두운 구름 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인다.
휴식끝 이번에는 소나무 옆의 잡초를 없애버리러 간다.
소나무 앞쪽으로는 앵두나무 두그루와 두릅나무 세그루를 심어서 너무 잘자라 주었는데 밭을
그냥 사용하는 아주머니가 농약을 치면서 앵두와 두릅이 빨간색으로 물들어 가면서 타죽었다.
일부 소나무도 잎이 타들어가서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무를 너무 바짝 심어서 약을 칠수가 없다고 하는데 대략 난감하다.
농약을 잘못뿌려 나무를 죽여서 미안하다는 얘기는 못할 지언정 그리 말을 하시니
내 생각이 잘못일까 차타고 집에 오는길에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무는 올봄에 밭작물을 심기 전에 내가 먼저 심어 놓았고 그 나무에 너무 바짝 심어놓아서 사람이
지나갈 틈도 없이 만들어 놓고는 당신이 약 치기가 힘들단다.
이것 참 내년에는 울타리로 줄이라도 해 놓고 나무를 심어 농작물을 바짝 심지 못하게 하려면 대충
몇미터는 띄어두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해는간다.
땅에 농작물을 조금이라도 더 심으려는게 시골 농사꾼의 마음일텐데 당신들 생각에는 쓸데없는
소나무니 유실수를 밭에 심어 놓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당신들이 심은 농작물이 중요한 만큼 내가 심어 놓은 앵두나 두릅도 내게는 소중한 것을 그분들은
모를까. 물론 일부러 그리 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약치기 힘들다는 말만
되뇌이니.
심어 놓은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러 와서 자란 모습을 보며 좋아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약해로 인해
붉게 타들어 가는모습을 보면 기분이 별로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주위에 석양이 내려앉는다.
그전에는 소나무 옆의 풀을 밸 때 혼자했는데 마눌님이랑 같이 하니 사람 한 명의 힘이 크기는 크다.
날도 시원하지만 시간도 훨씬 덜 든다.
붉게 타들어가서 죽어버린 앵두,두릅,소나무들을 보면 기분이 ........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내가 풀약을 치다가 그랬으면 어찌 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구룡산 너머로 석양이 깔리고
컨텔에도 운학에 내려놓은 이후 처음으로 저녁불이 켜진다.
지은지 얼마 안 되는 운학리의 교회도 어둠 속에서 십자가에 불이 켜있다.
자 .. 이제는 집으로 출발할 시간
두산약수터에서 약수물을 받는 물통의 물도 비우고 신발도 정리해서 컨텔이 들여놓고
마지막 뒷정리를 하면서 마눌님이 밝게 웃고 있다.
워쪄 이제 기분 좀 풀렸나.
출발하기 전에 전기계량기의 전원을 내린다.
전기요금이 한달에 110원이 나오는데 아마도 검침원이 매달 오지 않아서 인지 같은 요금만 나온다.
하기야 전기를 쓰면 얼마나 쓴다고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하겠지...
가까이에 있는 운학보건소에도 불이 꺼져있다.
그리고는 중앙고속도로 신림으로 들어서서 냅다 달린다.
우울했던 마눌님의 기분은 운학리에 떨쳐보내고 어둠 속의 이밤을 달려서 집으로 돌아간다.
마눌님은 시원한 맥주 한잔이 나는 얼음처럼 시원한 소주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