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몽마르트 언덕과 노트르담 대성당(2011.12.25)

또랑. 2012. 1. 27. 22:56

몽마르트 언덕과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여행 나흘째인 오늘은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포스트잇으로 만든 보글보글 캐릭터

 

 

과일을 파는 가게

 

 

오늘은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을 이룬다. ‘

마르스

(군신)의 언덕(Mont de Mercure)’이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

순교자의 언덕

(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1860년 파리에 편입되었다. 272년 성()도니와 2명의 제자가 순교한 곳이며, 12세기에 베네딕트파의 수녀원이 건립되었다. 그 일부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피에르 성당

은 지금도 남아 있다.

2월혁명

(1848) 전에 여기서 정치집회가 열렸으며,

파리코뮌

(1871)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1880년경부터 남쪽

비탈면

카바레

등이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기슭에 있는 클리시·블랑시·피가르 등의 광장 부근은 환락가가 되었다.

또한

근대미술

의 발달을 촉진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서도 유명하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고흐

·

로트레크

를 비롯한 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어

인상파

·

상징파

·

입체파

등의

발상지

를 이루었으나,

20세기

부터 점차

몽파르나스

로 옮겨갔다. 그러나 언덕 위에 세워진

사크레쾨르 대성당

(1910년 완성)은 순례지로서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으며, 또 유서 깊은 저택과

물랭루주

등의 카바레가 있다. 그 외에도 옛집이 늘어선 거리는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아직도 화가들이 많이 찾아든다. 

 

 

뒤로 보이는 사크레쾨르 대성당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피곤한 기색을 보이는 딸래미

 

 

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

 

 

여기도 몽마르뜨?

 

 

예쁜 짓을 하느라 바쁜 예신냥

 

 

탱고를 추는 포즈로...

 

 

거리 풍경

 

 

해산물을 파는 가게

 

 

케익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제원이

 

 

작은 기차가 다닌다.

 

 

맥주나 한잔 했으면 하는 사진... -.-:;

 

 

물랑루즈

 

1889년 개장하였다.프랑스어로 ‘붉은 풍차(Moulin Rouge)’라는 뜻으로 건물 옥상의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흥행물로 유명한 춤 '카드리유(나중에 프렌치캉캉이라 불림)'로 인기를 얻었다. 라 그류, 잔 아브릴 등의 무용수, 여자 익살꾼 샤 유 카오 등의 스타들은 H.de L.로트레크의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1903년 뮤직홀로 개축하였으며, 이 무대에서 미스탱게트, 모리스 슈발리에 등의 스타가 탄생하였다. 1915년의 화재로 모두 불탔으나 1918년에 재건하였으며, 1924년 이웃에 댄스홀이 세워졌다. 이후 유성영화에 밀려 1929년에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현재 물랭루즈로 알려진 것은 '발 뒤 물랭루즈'라는 댄스홀로 파리의 명물 가운데 하나이다. 

 

 

어색한 포즈로...ㅋㅋ 완전 어색해.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가려고 전철역에 도착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러가는 중

 

 

노트르담 대성당

 

센강()

시테섬

에 있는 성당이다. 공사는 1163년 주교 M.쉴리의 지휘 아래 내진() 건축이 시작되었고, 성왕 루이 치하인 13세기 중엽에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후에도

부대공사

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 측면 제실()의 증설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어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늑골교차궁륭(窿)으로 덮인 길이 약 130m의 장대한 신랑()을 중심으로 하는 오낭식()의 웅대한 건축으로, 신랑 양측의 열주(

트리포리움

(명층 아래 연이은 층)·명층(:높은 창)으로 된 명쾌한 3층 구성에서 그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단정한 서쪽 정면에는

최하층

에 《

최후의 심판

》의 부조로 유명한 중앙

출입문

등 3개의 출입구가 있으며 여기에서 《제왕의 상》이 늘어선 가로가 긴

중간대

를 거쳐

스테인드 글라스

를 본뜬 지름 9.6m 장미의 창을 중심으로 하는 층, 열주로 구성된

그랜드

 

갤러리

가 잇달리고, 그 위에 지상 6.9m 높이의

직사각형

쌍탑이 얹혀 있다.

힘차게 활 모양을 그린 다수의 비량()으로 지탱된 남북의 측면에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명층이 줄을 잇고, 중앙 부근에 돌출한 익랑() 끝 부분에는 지름이 13m나 되는 유명한 장미의 창과 아름다운 조각을 볼 수 있다. 익랑과 신랑의

교차부

에 치솟은 첨탑()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또한 이

대성당

나폴레옹의 대관식

(1804),

파리 해방

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8.26)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둘이서 뭐 하냐.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눈을 아래로 깔고 다시 한장..

 

 

자꾸 보니 점점 닮았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관광객들이 ....우와

 

 

작은 조각상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니 성탄미사가 있지 않았을까? 

 

 

열 개에 2유로라는 에펠탑 열쇠고리 

 

 

갈매기와 노는 중

 

 

셋이서 ..

 

 

여기는 세느강

 

 

조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

 

 

퐁피두센터

 

정식명칭은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 문화센터

(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Pompidou). 너비 166m, 안길이 60m, 높이 42m. 소재지구의 명칭을 따서 보부르센터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도서관(BPI), 공업창작센터(CCI), 음악·음향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IRCAM),

파리국립근대미술관

(MNAM) 등이 있으며, 이 센터의 창설에 힘을 기울인 대통령 G.

퐁피두

의 이름을 붙여 1977년에 개관하였다. 설계 공모를 통해 이탈리아인 R.피아노와

영국인

R.

로저스

의 공동설계가 채택되었다. 거대한 철골

트러스

속에 여러 시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설비 배관이 적색과 청색의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문화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담한

이미지와 자유롭게 내부의 변경이 가능한 설계가 파리건축계에 충격을 주었다. 견학자의 70%는 문화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건물 내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한다고 한다.

 

 

퐁피두센터 옆에 있는 스트라빈스키 광장

 

퐁피두 센터 앞에 자리한 광장이다. 러시아 출신의 현대음악가 스트라빈스키를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광장 중앙에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형상화한 분수가 자리한다. 분수 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의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재미있는 모양의 분수

 

 

누텔라 + 바나나 크레페라는데 ...

 

 

이제는 어디로 가시나요?

 

 

루이비통 스튜디오

 

1821년 8월 4일

프랑스

 

쥐라주

에서 태어났다. 1835년 파리로 올라와 유명한 트렁크 및

케이스

제작자인

마레샬

(Marechal)의 견습공으로 일하며 귀족들의 트렁크 꾸리는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직사각형

모양의 뚜껑이 평평한 가방을 개발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당시 가방은 둥근 모양으로 옷을 담기에도 불편하고 쌓을 수도 없었다. 수십 개의 가방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던 귀족들에게

루이 뷔통

이 개발한 가방은 큰 인기를 얻었다. 이와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1854년에 파리 중심가 뤼 네뷔데 카푸신 4번가에 자신의 매장을 열었다.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트렁크 디자인으로 1867년, 1889년에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에서는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892년 2월 27일 루이 뷔통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조르주 뷔통(Georges Vuitton)이 사업을 물려받았다. 1896년 모조품이 성행하자 조르주 뷔통은 이를 막기 위하여

모노그램

 

캔버스

(Monogram Canvas)를 개발하였다. 이것은 아버지의 이름 첫글자인 L과 V를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경향의 꽃과

별무늬

를 결합한 디자인이었다. 모노그램 캔버스는 루이 뷔통 제품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자리잡았으며, 최초로 제품에 회사 마크를 도입한 사례로 평가된다.  루이 뷔통의 디자인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전통을 지키고 있다. 또한 모노그램 캔버스처럼 같은 디자인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만들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도록 하였다. 루이 뷔통의 사업은 현재까지 150년 동안 5대를 걸쳐 이어져 내려오며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사업 분야 역시 액세서리·의류 등 토털패션 전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알록달록한 빵들

 

 

부쉬 드 노엘

 

문학적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굽는 장작으로 번역되는 이 전통적인 프랑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장작을 닮은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모카와 초콜릿, 버터

크림

을 펴바른 genoise sheet로 만들어지고 통나무 모양으로 굴린 후 버터크림으로 덮는다. 표면은 통나무의 나무껍질 모양으로 만들고

피스타치오

 

땅콩

으로 만든 이끼와

버섯머랭

으로 장식된다.

 

 

이제는 집으로 향했다.

 

성탄절 저녁에 집에서 먹는 저녁은 과연 ...

 

 

접시에는 햄이 담겨져 나오고

 

 

치즈(후추치즈와 고추씨치즈)도 준비되었다.

 

 

소고기도 보이는데

 

 

소고기는 뜨거운 라클렛 그릴 위로 올라가고 치즈는 라클렛 그릴 아래에서 녹고 있다.

 

 

제원이는 열심히 요리 중

 

 

야채와 햄과 고기가 보이는데

 

 

이름도 생소한 스위스 요리인 라클렛을 해서 먹었단다.

 

 

라클렛 그릴에서 녹인 치즈에 찍어서 먹는 것 같은데... 워~ 느끼해.

 

 

아까 산 부쉬 드 노엘은 후식으로...